왜일까?
교육부의 모 기획관은 <아름다운 은유>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의 말을 하더라도, 무지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과의 차이는 극과 극의 결과를 만든다.
같은 의미의 말을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소설 ALCHEMIST(우리말 번역- 연금술사) 의 첫 도입부분에서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의 생각을 빌려 양떼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잔잔하게 서술하였다. 그의 글은 아름다운 은유법을 사용하였고, 그리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장을 덮고 자신의 현재 삶을 돌아보며 오랫동안 사색하게 만든다. 분노 대신에.
[‘양들은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전혀 없겠지.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걸 테고,’
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물과 먹이뿐이었다. 자신들의 양치기가 안달루시아의 맛있는 목초지들을 많이 알고 있다면 양들은 언제까지나 그의 친구로 남아 있을 것이었다. 매일매일이 다른 날들과 다름없는 것도, 해가 뜨고 지는 사이 긴 시간들이 그저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것도, 짦은 생애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어보지 못하는 것도, 마을 소식을 전해주는 인간의 언어를 못 알아듣는 것도 양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양들은 물과 먹이만 있으면 즐거워했고, 물과 먹이는 지천에 널려 있었다. 착하게도 양들은 그 대가로 양털을 제공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고기까지 내 주었다.
‘만일 어느 순간 내가 괴물로 변해서 자기들을 차례로 죽여버린다 해도, 양들은 자기 친구들이 거의 다 죽고 난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릴 거야. 그건 다 내게만 의지해 본능에 따라 사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지. 내가 자기들을 먹여주니까.’
문득 산티아고는 자신의이런 생각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무화과나무가 서 있던 버려진 교회, 그곳이 남겨놓은 음산한 기분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