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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타이너 강연록> 신비적 지혜에 비추어 본 예술(GA 275) <9>

그런데 인류의 발달에서는 이렇습니다. 하나의 단계를 지나가면, 그 단계를 나갔다는 것은 나란히 흐르는 또 한 단계의 체험과 연결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사람이 제가 설명한 방법으로 아리만을 거슬러 기술로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또한 다른 방법으로 아리만을 거슬러 나아가는 것이 됩니다. 오늘날 물질주의가 만들어 놓은 거친 역사관 대신 영적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면, 지금 정신과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지난 400년을 돌이켜 보면, 무엇보다 사람은 주변과 환경에 대해서만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관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 자신 안에서 나오는 그 어떤 것, 즉 언에에 대해서도, 말하기에 대해서도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관계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언어로 표현해온 것은 현대의 물질주의적 학문의 견해와는 달리, 완전히 자각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체험과 훨씬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은 주로 사람의 잠재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신의 본성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정신의 본성은 사람의 언어 안에 존재하고 활동하며, 사람이 단어를 만들어 말할 때, 그 단어 안에 침투하는 것도 요소를 이루는 영적  본성이 들어갑니다. 단어들이 날아가는 중에 정신의 본성은 사람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는 공간안으로 날라갑니다. 그러므로 언어의 세밀한 부분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말을 할 때, 욕망이 시키는 대로 쉽게 자신을 맡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15, 16세기까지 사람은 자신의 언어에 대해서, 언어에 들어 있는 기초적인 정신의 본질을 생생하게 체험했다고 여겼습니다. 언어에서 요소를 이루는 정신성을 체험한 것입니다. 언어에 들어 있는 정신성(Geistigkeit)이 그의 내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사람의 개별체보다 어떤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더 독창적이고 더 정신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물질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언어의 독창적인 정신성을 느끼는 일은 오늘날 흔치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언젠가 저는 분명하면서도 평범한 여러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의 신념으로 현재의 물질주의적인 역할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는지 제시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떨어져 나온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라인 강을 따라 차를 모는 사람이 “라인 옹(노인)”이라는 말을 한다면, 그의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여? 물론 그 사람 자신은 분명 뭔가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그는 뭘 가리킨 걸까요? 사람들이 “라인 옹”이라고 말하면서 강바닥에 난 홈을 가리키는 건 아닐 것입니다. 강에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그 강바닥이 유일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 “라인 옹”이라고 할만한 것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물은 언제나 흘러 늘 새로운 물이 그 자리를 채우므로, 움푹 패인 강바닥 말고 뭔가 옛 것을 찾으려해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라인 옹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언어는 사람보다 독창적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의식할리가 없지만, 그건 라인 강의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 “라인 옹”이라는 말은 강의 신에 속하는 원소적 존재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의 예는 좀 거칠기는 합니다. 하여튼 모든 언에에는 그런 영적인 성격이, 정신성에 대한 그런 맏음으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후기 아틀란티스 제 4문화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리고 근대가 시작되는 15, 16세기까지 유럽의 모든 민족에게서 사람의 영혼 본성 안에 적어도 언어를 통한 정신성과의 이러한 연결을 느끼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지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요한복은의 서두의 느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요한복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사실 이런 표현이 나오도록 한 것은, 말이란 것이 사람의 전체 조직과 생명 안에서 무엇보다  원소적인 정신성을 통해  감각세계를 넘어서는 우주 전체와 연결한다는  의식이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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