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의 바닷가

마치 아열대 지방의 우기철이 된 것처럼 연일 퍼부어 대던 장대비가 개이고 모처럼 해가 이글대며 폭염을 쏘아내던 어제 금요일, 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나무 그늘 아래로 다가오는 바람결이 제법 살가운 느낌이 왔었습니다. 우주의 시계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어, 이렇게 올 한 해의 화려한 계절 여름도 서서히  뒷걸음질 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이제 곧 스산한 바람에 낙엽이 지는 쇠락의 계절이 다가와서,  ‘나’가 시작된 이 영혼의 고향으로 한 발짝 더가까이 나를 데려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 여름의 치마 끝자락을 붙들고 바닷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만만한 고향 친구들이 공감해 주어 오늘 낮, 마치 초가을같은 라이트 블루 칼라의 하늘을 머리에 이고  출발해서 태안 해안 국립공원에 포함된 ‘꽂지해수욕장’에 왔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안산으로 빠지면서 지난 여름 빗속에 다녀왔던 덕풍계곡에 관한 화제가 잠시 오갔습니다. 국도로 나와서 오는 내내 매미의 연가에 귀를 내주었고 차창 밖 들판에서 벼 이삭이 익어가는 겸손한 정경에 마음을 주며 세속과의 거리를 넓혔습니다. 먼저 신두리 해안 사구로 길을 잡았습니다. 한 뼘 정도 남은 서쪽 하늘에 군데군데 옅은 구름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는 백사장을 걸어 을 모래언덕들이 펼쳐진 신두리 사구 탐방길에 올라보니 마치 어느 사막에 온듯한 느낌에 신비감도 들었습니다. 모래언덕들을 배경으로 섬들이 떠있는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의 새털구름에는 연하고 부드러운 복숭아색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오래 전에 보았던 잊지 못할 영화 ‘Out of Africa’가 눈앞의 장관과 오버랩 되어 왔습니다.
자유로운 영혼 데니스 (로버트 레드포드)를 깊이 사랑했던 카렌(메릴 스트립)이 집 앞에 앉아,  아프리카 초원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 장면, 그리고 그 장면의 배경에 흐르던 주제곡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이 실황처럼 내 눈과 귀와 마음 속에 되살아 났습니다.  영화 속 아프리카 초원 오후의 풍경과, 그 장면에서 클로즈 업 된 우수적인  메릴 스트립의 표정에 정말 기막히게 어울렸던 주제곡,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마치 메아리 울림 같던 목관 악기 클라리넷의  음색과 애수적인 멜러디가 저 음영이 드리워지는 아름다운 모래언덕과, 회백색 바다와, 연한 복숭아 크림빛 새털구름을 배경으로. 부드러운 해풍에 실려오는듯 했습니다.

뜨거운 여름 내내 북적였을 해수욕 인파의 잔상이 남아 있을 것 같은 철지난 바닷길을 따라 꽃지해수욕장 주차장에 내려 때마침 반뼘쯤 남은 석양이 바위섬 곁으로 수줍은듯 숨어 내리는 광경에 빠져 땅거미 다가오는 참어서야 백사장 옆길을 따라 장소를 물색해 야영텐트를 쳤습니다. 초승달이 잔잔한 바다에 달빛을 띄위주고, 파도가 발밑에 밀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텐트를 쳤습니다.
오늘 밤은 비박 텐트 앞에 오래 머물러 앉아 이슬을 맞으며 별과 함께 점점 사그라져갈 막바지 여름 냄새를 흠뻑 가슴에 채우려 합니다.

https://youtu.be/pzOFx9HCP7Q

https://goo.gl/photos/HfixfVXFXHVQk69w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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