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슈타이너의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초판 발행일 2008. 9. 30. 펴낸 곳 섬돌출판사, 옮긴이 이정희) |
41. 아동과 주변 환경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를 요약하는 마술적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 그것은 모방과 모범(본보기)입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두고 가장 모방을 잘하는 동물이라 했습니다. 이런 표현이 젖니갈이까지의 아동기보다 더 잘 들어맞는 인생의 시기는 없습니다. 그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모방하며, 또한 모방 속에서 아동의 신체 기관들은 그때 간직한 형태들로 스스로를 형성해 나갑니다. 여기서 물질적 환경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거기에는 아동을 둘러싸고 물질적으로 발생하는 일들뿐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행해지는 모든 것, 아동이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모든 것, 신체의 공간에서부터 아동의 정신적 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또한 아동이 볼 수 있는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위, 영리하거나 멍청한 행동이 총 망라됩니다.
42. 도덕적 표현들이나 이성적인 훈시들이 아이에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위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하는 가시적인 행동이 앞서 기술한 식으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훈계조의) 가르침은 에테르체에만 영향을 미칠 뿐 신체에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치 몸이 신체의 탄생 전까지는 모체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7세까지 에테르체는 에테르막에 둘러싸여 보호를 받습니다. 7세 이전에 이러한 에테르체 안에서의 상상(생각), 습관, 기억 등과 관련한 발달은, 마치 모태 안에서 눈과 귀가 외부 빛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발달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 ‘저절로/스스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 파울의 탁월한 저서 <레베나> 또는 <교육론>에는, 세계 여행자가 여행 중에 배운 것을 모두 합쳐 놓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배운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단 아이는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모방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유아의 신체 기관들은 주변의 모든 환경의 작용을 통해 그 형태가 만들어집니다. 만일 아이가 색과 조명상태가 적절한 환경에 놓여 있다면 건강한 시력이 형성됩니다. 또한 아이가 주변 환경에서 도덕적인 것을 보게 되면 뇌와 혈액순환에서도 건전한 도덕성을 위한 신체적 자질이 형성됩니다. 어린이가 7세 이전에 주변 환경에서 어리석은 행동만을 보게 되면, 뇌는 나중의 삶에서도 역시 그를 어리석게 밖에 할 수 없는 형태들을 받아들입니다.
43. 손의 근육이 그에 알맞은 일을 하게 되면 강하고 힘 있게 되는 것처럼 뇌와 인체의 다른 기관들도 둘러싼 환경에서 올바른 인상을 받아들이게 되면 바른길을 잡아 나갈 것입니다. 아래 예가 문제의 핵심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맑은 냅킨 천 조각으로 인형을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모서리로 (매듭을 지어) 팔을 만들고, 다른 두 개로 다리를 만들고, 매듭 하나로 머리를 만든 다음 잉크로 눈, 코, 입을 찍어 넣으면 인형이 됩니다. 또는, 진짜 머리털에 볼화장을 한 이른바 ‘아름다운’ 인형을 구입하여 어린이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인형이 정말로 추하다든지 또는 삶에 대한 어린이의 건전한 미적 감각을 망쳐 놓을 수 있다는 점은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교육과 관련한 문제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아이 앞에 헝겊 인형을 놓아주면, 아이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그 인형이 전달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채워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상상 활동이 두뇌 형태를 조성하는 데에 작용합니다. 마치 손의 근육이 적당한 활동을 통하여 발달하는 것처럼 이것은 (머리는) 발달합니다. 만일 어린이가 이른바 ‘아름다움’을 갖게 되면 뇌는 그 이상 활동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뇌가 개발되는 대신에 발육은 위축되고 바싹 말라버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정신과학자들처럼 뇌를 들여다보고 형태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자기 아이들에게 두뇌 창조력을 실제로 자극할 수 있는 놀잇감만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엄밀하게 수치화된 죽은 형태들로만 되어 있는 모든 장난감은 아이들의 형성하는 힘(에테르체)을 황폐화하고 마비시켜 버립니다. 이에 반해 생동감 있는 상상을 자극하는 것은 모두 올바른 영향을 미칩니다. 물질화된 우리 시대에는 좋은 장난감들을 거의 생산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움직일 수 있는 나뭇조각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하나의 대상물을 두고 망치질하는 두 명의 대장장이로 보이는 것은 좋은 장난감입니다. 그와 같은 것들은 지금도 시골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그림책들도 있습니다. 그 그림책들은 인물들을 아래에서 실로 잡아당겨 아이가 죽은 그림을 줄거리의 그림으로 바꿔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신체 기관의 내적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또한 이런 움직임으로부터 기관들의 올바른 형태가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