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기술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이 글은 어찌보면 지나치게 종교적이고 보수적이라 할 수 있지만, 지은이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는 18세기 프랑스의 세속사제이었다. 그러니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관점으로 글을 해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말과 글이 넘치는 지금 세상에, 되돌아보고 곱씹을 대목을 헤아려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 누군가가 얼토당토않은 짓을 하거나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을 할 때, 그것을 들어주거나 동조하는 척하면서 속으로 비웃기 위해 입을 닫는 것은 조롱형 침묵이다. 이때 상대는 자신이 칭찬과 동조를 이끌어낸다고 착각하면서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계속 이어가기 마련이다.
*나는 제대로 침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만약 그것만으로 족하다면 인간과 짐승이 서로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자기 입안의 혀를 다스릴 줄 아는 것, 혀를 잡아둘 때나 자유롭게 풀어줄 때를 정확히 감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 일단 침묵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는 모든 대목에서 변치 않는 단호함을 유지하는 것.
* 지혜의 상책은 침묵하는 것, 중책은 말을 적당히, 적게 하는 것,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니더라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책이다.
*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장점이다.
* 만약 무언가를 말하고픈 욕구에 걷잡을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결코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무조건적인 침묵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 잘못된 말을 하는 태도, 말이 너무 많은 태도, 말이 별로 없는 태도…. 다 나쁜 태도이다.
* 말을 적게 하되 제대로 된 발언을 하는 것이 완벽한 태도이다.
저자는 말을 전혀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정말 필요할 때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나쁜 태도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가 바로 말해야 할 그 때임을 어찌 알까. 누구나 자기는 그 말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다 주장할 것이니 말이다.
* ‘아주 좋은 내용이라도 미주알고주알 글로 풀어내는 것은 문제다.’
* ‘학식이 풍부한 이가 대중을 위해 글을 쓴다. 이미 나와 있는 산문집을 운문집으로 고쳐낸다든지… 이런 짓을 왜 하는가? 그 자체로 탁월한 저서가 있는데…’
그리고 저자는 중요한 지적을 한다.
* 만약 모든 사람이 작가 노릇을 하게 되면 쌓이는 책들로 무엇을 할 것인가? 모든 것이 글로 표현되면 인간의 정신이 활동할 여지가 더 이상 남아 있겠는가?
말로도 글로도 표현되지 않은 인간의 깊은 영성의 세계, 그것을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시나 그림을 명료한 비평으로 완벽하게 해석한 글을 읽고 싶지 않다. 궁금하지만 결코, 끝내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글의 침묵’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