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인용 : 바바라 J. 패터슨, 파멜라 브래들리, 강도은 옮김 ‘무지개 다리 너머, 물병자리]
이 시기는 또한 “왜(Why)?”의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계속 반복해서 “왜?”라고 물을 테지만, 정작 우리의 대답에는 그렇게 많은 관심을 안 나타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왜?”라는 물음으로 탐구하고 있는 것은 자기들도 뭔가를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른들은 아이의 질문에 잘 정리된 과학적인 대답을 해주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가 쉽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간단하고 시적인 대답이 훨씬 좋으며, 사실 이 단계에서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도 간단한 대답 이상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시기에 아이가 “왜 밖이 깜깜해요?”라고 물으면, “아버지 해님이 지금 잠자고 있어서 그렇단다. 아침에 다시 나와서 우리를 깨워줄 거야.” 같은 대답이 좋은 예이다. 세 살에서 다섯 살 사이의 아이에게는 이와 같은 대답만으로도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어린 아이들의 사회적 능력 역시 발달하고 있는 중이다. 각자 따로 노는 두 살짜리 아이의 놀이에서부터 세 살, 네 살, 다섯 살이 되면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놀이로 발전해 간다. 하지만 세 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내가(I)” 그리고 “싫어”라는 말들은, 흔히 고집부리는 시기라고 알려진 네 살이나 네 살 반즈음까지 이어질 수 있다. 누군가가 자기와 맞서거나 어떤 반대에 부딪치게 되면, 네 살짜리 아이는 실제로 발뒤꿈치로 땅을 파면서 도전에 응할 수도 있다. 즉,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즐기면 즐길수록 그만큼 장난감을 친구들과 나누는 일이 더 힘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단계의 끝무렵이 가까워오면 아이는 이전보다 조화로운 시기로 접어들어 간다. 심지어 몇 몇 교육자들은 다섯 살 나이의 조화로운 단계를 은총의 시기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