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지역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휴양지입니다. 크고 작고 높고 낮은 산들이 만들어낸 많은 계곡들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며, 그 중에서도 용추계곡은 아직도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비경으로 수도권 계곡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1,000m가 넘는 연인산의 깊은 품에 자리잡은 계곡은 아홉 마리의 용이 몸을 흔들며 하늘로 승천한다는 전설을 담고 있어 ‘용추구곡’으로도 불리기도 하며, 와룡추·무송암·고실탄·일사대·추월담·권유연·농완계 등 9개의 절경지가 있어 옥계9곡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곳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칼봉산(900m)에서 발원하여 옥녀봉을 감싸듯이 흐르는 24㎞에 걸친 계곡 중에서 오늘의 일정은 상류 쪽에서부터 13킬로의 계곡을 내려가는 트래킹입니다. 마일리의 국수당 ~ 우정고개 ~ 원시림길 ~ 용추계곡 발원지 ~ 용추계곡 ~ 주차장까지의 코스입니다.
모처럼 친구 ‘몽산’이 동반자 한사람과 함께 참가하여 동행합니다.
일행들은 상봉역에서 경춘선 전철을 타고 청평 역에서 내립니다. 2번 출구로 나오니 서울과 달리 하늘은 착 가라 앉아 있고 몇 방울 씩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밤 이곳에는 굉장한 폭우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용추계곡 주차장에는 우리 외에 대형 버스 한 대가 들어와 일행을 쏟아내긴 했지만, 일요일인데다가 비 소식 때문인지 등산 팀은 우리 일행과 그들 밖에는 없습니다. 초입에서 둥글게 모여 가벼운 준비운동으로 몸 풀기를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정말 무덥고 습한 날씨입니다. 그리 가파른 오르막도 아니고 하늘도 구름에 가려져 있어서 뜨겁지도 않은데, 어제 밤 이곳에 내린 폭우로 인해 숲 속의 습도는 그야말로 포화점까지 달한 듯, 바람 없는 산의 동북쪽 사면은 계곡 길임에도 불구하고 초입부터 일행을 땀으로 흠뻑 젖게 하며 지치게 합니다. 중간에 두 번쯤 쉬며 옛날 임도(林道)에 도달하니 비로소 약간의 평탄한 오름세가 앞에 나타납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잣나무들이 우거진 숲과 함께 원시림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올라 왼편으로 꺽어 내려가 드디어 점심식사를 합니다.
오늘도 ‘가고파’님은 배낭 가득 맛있게 준비해 온 반찬들을 꺼내 놓습니다.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동행자들의 입맛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치고는 너무 많습니다. 그 분은 그 음식들을 준비하면서 전날 하루를 장보기와 음식 준비로 시간을 소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것들을 담은 그릇들을 챙겨 커다란 배낭을 꾸리고, 60 나이의 여인이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와 간소한 배낭을 맨 나같은 남자들도 숨이 턱까지 닿는 산길을 뒤처지지 않도록 오르는 고행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현실은 일행들 그 누구도 그런 희생과 배려를 알아주지 못합니다. 그저 서로 음식을 나눠 담아가기에 바쁘고, 나눠 먹기만 분주합니다. 과연 누가 그분의 노고를 진심으로 내일처럼 이해하고 안타까운 연민을 가질까 살펴봅니다. 그러나 번번이 애달픈 마음만 들 뿐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갈수록 고마움은커녕 점점 더 맛있는 음식, 더 많은 음식을 기대할 겁니다. 누군가의 배려와 양보도 반복되다보면 받는 사람이 그것을 권리나 권력으로 착각을 하게 되어 당당히 요구하게 되고, 충족이 안되면 오히려 불평하고 불만을 하게 되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탐욕적입니다. 자신은 스스럼없이 당연한 듯 남에게 민폐를 끼치고, 심지어는 당연한 듯 요구까지 하지만, 정작 자신의 것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조차 아까워 움켜쥐기만 할 뿐이지요.
아주 어렸을 적 교과서에 실렸던 할아버지와 금고기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살던 어부 할아버지의 그물에 어느 날 왕관을 쓴 금고기가 걸립니다. 금고기는 살려 달라 어부에게 말하면서 살려주는 대신 할아버지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준다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맘씨 고운 어부 할아버지는 괜찮다 사양하며 그냥 금고기를 바다에 돌려보냅니다. 집에 와서 할머니에게 그 말을 하자 할머니는 욕심 없는 할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다시 가서 금고기에게 새 물동이를 하나 달라 하라 시킵니다. 어정쩡 바닷가에 나온 할아버지가 금고기를 불러 부끄럽게 사정을 말하니 집에는 새 물동이가 놓여 있었고, 할머니는 그를 빌미로 점 점 욕심을 부려 다음에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달라하고, 결국 은혜를 베풀어 주는 그 금고기를 신하로 삼는 임금으로 만들어 달라 하지요. 그리고 그 욕심이 화근이 되어 그동안 받았던 물동이도, 고래 등 같은 기와집도 모두 다 사라져버리고 애초의 낡은 오두막집 앞에 앉아 있는 가난한 할머니로 되돌려 졌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예기(禮記>’의 곡례(曲禮)편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예란 항상 오고 가야 하는 것으로, 가고 오지 아니함은 예가 아니요, 오고 가지 아니함도 또한 예가 아니니라,”
점심 식사 후 일행은 드디어 계곡 트래킹을 시작합니다. 상류 계곡은 인공의 훼손 없는 비경을 자랑합니다. 사람조차 드물어 한적한 계곡 물길은 그야말로 수정같이 맑고 얼음같이 차가운 옥류입니다.
햇살도 가려진 계곡 트래킹은 말그대로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여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환상입니다. 어제의 비로 인해 늘어난 풍부한 수량은 때로는 넓고 얕게, 때로는 좁고 깊게 흐르고, 구비치고, 폭포가 됩니다. 큰 돌을 던져보면 거품이 오래도록 올라오는 것을 보니 바닥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물깊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길고 긴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오며 일행들도, 나도 간간이 배낭을 벗어 놓고 계곡 물속에 온 몸을 담가봅니다. 정말 어름 물 같습니다. 이 산은 숲이 깊고 넓음에도 불구하고 산모기가 없다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빠른 흐름과 차갑고 맑은 물속에서는 모기의 알이 부화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덕유산 계곡도 이처럼 길었죠. 그리고 수량도 이처럼 많았죠. 그 산, 덕유산까지도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중류로 내려와도 물은 여전히 투명합니다. 놀러 온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띨 뿐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소위 펜션이라 간판을 붙인 길옆의 숙박업소들이 아름다운 계곡에 눈엣가시처럼 듬성듬성 박혀 있다는 점입니다. 그 건물들의 모양새나 외관은 양복에 짚신을 신긴 것처럼 계곡의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놀러 온 사람들은 그저 무질서할 뿐입니다. 지나는 사람들은 전혀 안중에 없다는 듯 여기 저기 늘어놓은 수박 등의 과일, 너저분하게 줄에 걸어 놓은 옷가지 빨래들. . . . 고기 굽는 냄새. . . . 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계곡 속에서 자연과 아름다움에 대한 외경심은 어디로 가고 도심에서의 무례하고 천한 생활 습관들만 재현해 내는지, 약 4킬로의 시멘트 포장 갓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내내 마음이 어둡습니다.
다시 경춘선 열차를 타고 상봉역으로 향합니다. 긴 거리를 가야 하는데 모처럼 얼마 안있어 자리가 납니다. 저쪽에 ‘가고파’님이 보입니다. 배낭을 바닥에 내려 세워 놓고 서 있습니다. 그 앞에는 우리 일행 중의 나이 지긋하신 한 부인과 그 남자 동행자가 보기 사나운 모습으로 서로 얼싸안고 있습니다. 나이든 사람들로서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되기는 어려운 행태인 것 같습니다. 민망한 표정으로, 어색한 분위기로 그 앞에 서 있는 ‘가고파’님을 불러 내 자리에 앉힙니다. 커다란 음식 배낭을 메고 와 준 일에 대한 작은 답례입니다.
상봉역에서 내려 뒤풀이를 합니다. 닭요리입니다.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가끔 산행 뒤풀이는 산행 후의 느긋한 여눈에 대한 데몰리션입니다. 앞서 산행에서 정화시킨 영혼이 다시 오염되기 십상입니다. 오늘도 술 마신 그분(열차 안에서의 볼성 사나웠던 그 여성분)의 거침없는 취중 고성이 역겨움을 한껏 부어줍니다. 뒤풀이는 앞서의 산행에 대한 느낌을 나누며 품위 있게 식사하고 여운을 간직하고 돌아가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술은 술 마시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 술집에 가서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식사자리가 술자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술집이 술마시는 곳이며, 그곳에서는 취객의 추태도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저 정도면 술집에서조차도 거부감을 줄 것입니다. 술은 저렇게 천박하게 마시는 음식이 아닙니다. 고래(古來)로 술은 신을 만나는 의식에서 신과 함께 나누는 신성한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저런 태도는 술에 대한 인간의 모독행위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무더운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산행의 신선한 감흥은 뒤풀이에서의 역겨움이 다 무너뜨렸습니다.
“사람의 가치를 직접으로 나타내는 것은 재산도 아니고, 그의 행적도 아니고, 그 사람됨이다.”
아미엘의 일기, 1859년 12월 01일자 일기에 적혀 있더군요.
-임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