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내용 출처 : 바바라 J. 패터슨, 파멜라 브래들리 지음. 강도은 옮김,
평생을 좌우하는 0 ~ 7세 발도르프 교육, 무지개 다리 너머 (2007, 물병자리) |
이 시기에 아이들은 보다 초범이 맞추어진 놀이를 하게 된다. 세 삵 즈음이 되면 최초의 상상 fantasy(파타지)놀이가 나타난다. 즉,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처럼 행동하지”라는 놀라운 단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 단계는 아이 발달에서 중요한 시금석이 되는 시기이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주위 환경을 자기 놀이를 위해 필요한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현실과 판타지는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에 그 둘을 딱 잘라 구분할 수가 없다. 식탁 밑에 자기들이 지은 집을 아이들은 진짜 집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일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 걸까? 어린 아이들은 감각 인상을 통해 자기 주변에 있는 것들을 흡수한다. 여전히 힘차게 활동하고 있는 아이의 생명력으로 인해 이 감각적인 이미지들은 아이 안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아이는 이것을 충분하게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아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경험에 “참가하여” 이런 저런 놀이 속에서 혹은 자신이 목격한 전체 사건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 때 마음 속의 이미지가 너무나 생생히 상아 있기 때문에, 아이가 놀이를 할 때 “그곳에 있어야” 할 것으로는 오직 단순한 탁자와 인형만 있으면 된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것은 모두 진짜 실재하는 것이다.
만약 어른인 우리가 어떤 사람의 행동을 정확하게 모방하고 싶다면, 시간을 들여서 그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허지만 아이는 본능에 가까운 직관으로 전체 그림을 하나의 장면으로 흡수하여 어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모방하고 반응한다.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놀이를 할 때 자기들이 맘대로 변형시킬 수 있는 장난감들이 필요하다.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은 이러한 장난감들, 가령 조개껍질이 담긴 바구니들, 솔방울들, 나무토막들, 실크나 면으로 된 천들, 인형들을 준비해 놓는다. 놀이가 변화하면서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장난감들을 갖고 놀게 되면, 아이들은 주위환경 안에서 그것들을 가지고 일하며 살아가는 것을 배울 것이다. 아이들은 실제로 가게 주인, 농부 등 살면서 필요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기 또래의 아이가 되는 놀이를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아이들은 자기보다 어린 아기나 어쩌면 어른이 되어보는 놀이를 하고 싶어하지, 보통은 자기 또래의 아이 역할은 별로 안 하고 싶어 한다.
12월 초순 즈음에 나를 찾아왔던 우리 반 아이의 어머니가 기억난다. 그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기 아들에게 무엇을 사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직 유치원생인 자기 아이에게 비디오 게임기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움직이는 모형 장난감들을 사주고 싶지는 않지만 도대체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몇 개의 바구니를 사서 거기에다 비단으로 된 천 조각들, 유리구슬들, 나무로 된 빨래집게들, 면으로 된 옷감들을 넣어주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거기에다가 나무로 만든 놀이용 작업대 두 개를 더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어머니는, 아이 자신은 고작 천조각들을 받았는데 이웃집 아이는 컴퓨터 게임기 같은 것을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기 아이가 어떻게 느낄지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크게 웃었다. 하지만 이것들이 바로 그녀가 아이에게 사주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나중에 그녀는 아이와 함께 정말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냈다고 알려왔다. 아들 아이와 아이의 여동생은 이 선물들을 가지고 놀면서 너무나도 행복해했다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하루 중 아무런 간섭 없이 놀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사시이다. 이 시간은 아이들로 하여금 삶의 여러 가지 역할들을 충분히 놀이해보고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계발시켜주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몰두하는 태도로 일을하면서 보여주었던 굳건함을 놀이를 통해 표현할 것이다. 이럴 때 어른들이 항상 아이와 함께 놀아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함께 놀아주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아이의 놀이는 우리가 나날의 삶 속에서 일을 할 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할지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우리가 아주 세속적인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일지라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