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Up to Date with the Most Important News

By pressing the Subscribe button, you confirm that you have read and are agreeing to our Privacy Policy and Terms of Use
Follow Us
Follow Us

Keep Up to Date with the Most Important News

By pressing the Subscribe button, you confirm that you have read and are agreeing to our Privacy Policy and Terms of Use

<주간연재 > 5-3. 분명한 메세지들과 선택의 범위 정하기

연재내용 출처 : 바바라 J. 패터슨, 파멜라 브래들리 지음. 강도은 옮김,

평생을 좌우하는 0 ~ 7세 발도르프 교육,  무지개 다리 너머

(2007, 물병자리)

우리가 아이들과 서로 소통하는 방식은 분명할 필요가 있다. 만일 아이들에게 질문 형식으로 뭔가를 지시한다면, 혼란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너의 외투를 거는 게 어떻겠니?” 혹은 “지금 옷을 입을래?” 혹은 “신발을 신어볼래?” 같은 말들이 포함하고 있는 메시지는, 우리가 요청한 것을 아이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사항임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 집 아이가 여섯 살 무렵 때, 나는 이처럼 분명하지 않은 질문이 가져오는 결거과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너의 방을 청소하고 싶지 않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아니요’라고 말하면, 엄마는 나에게 화를 내실 거잖아요.”

몇 년 전 학교에서 있었던 명절 축제 때,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또 다른 유형의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한 어머니가 대략 두 살쯤 된 자기의 어린 딸에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기서 먹고 싶어? 아니면 집에 가서 먹고 싶어?” 꼬마 여자애는 대답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 했다.  “여기서 먹고 싶어? 아니면 집에 가서 먹고 싶어?” 여전히 꼬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가까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상황이 어찌된 건지를 설명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머니가 했던 질문을 그대로 되받아서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서 먹고 싶니? 아니면 집에 가서 먹고 싶니?” 마침내 꼬마는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아이가 피곤한가 봐요. 집에 갑시다.”라고 말했다. 아이는 결정을 하라는 가족들의 요청에 분명히 마음의 부담으 느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어린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를 묻게 되면, 아주 많은 메뉴가 있는 식당에 갔을 때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그런 결정은 어른인 우리게게조차 지나친 부담일 수 있는데, 하물며 어린아이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가족이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피츠버그 근처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의 일이다. 그곳의 간선도로를 따라 여행을 할 때면우리는 종종 호워드 존슨 식당에 들르곤 했다. 식당에서 아이들은 보통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는데, 특히 날이 더울 때는 더 그랬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슨 향이 첨가된 것을 먹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 식당의 광고 문구에는 무려 스물여덟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제공한다고 쓰여 있었다. 아들인 폴은 우리가 그곳에 갈 때마다 이 스물여덟 가지 아이스크림의 이름 전부를 듣고 싶어 했다. 선택을 한다는 게 아이에게는 지나친 부담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는 결국 늘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대충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 같아요.”

무얼 입고 싶은지, 무얼 하고 싶은지를 묻는 일도 아이들 마음속에 이와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러저러한 것을 원해요.”라는 말은 지나치게 빨리 아이들의 개성을 이끌어내는 측면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점점 더 좋고 싫음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뭔가를 먹고, 옷을 입고, 자러 가고, 엄마를 따라 가게에 갈 때마다 이 “나는 원해요.”라는 말이 아이들의 사용하는 중요한 어휘가 될 것이다. 이럴 때 사회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 우리 모두는 아이가 이 말을 하는 상황을 슈퍼마켓 등에서 목격하거나 그 장면을 아이와 연출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즉, “나는 과자, 사탕, 상자 안에 장난감이 들어 있는 특별한 시리얼을 원해요.”

선택권을 주는 일은 결과적으로 아이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즉,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민감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어린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일이 아이의 영혼에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이런 아이들은 좀더 커서도 자신들 삶에서 요구되는 필요한 일들을 안 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학교 공부, 집안일, 텃밭일 같은 것을 안 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10대 아이들과 부모들이 벌이는 다툼들은 흔히 어린 시절에 아이가 이런 식의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갖도록 키원진 것의 직접적인 결과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지나친 선택권을 제공 받으며 키워진 아이보다 더 불안정하고 불만족스러워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부모들을 위한 강의에서 유진 슈바르츠Eugene Schwartz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들이 제공하는 무수히 많은 선택권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유머러스하게 묘사하고 있다.

 

잘 잤니, 얘야? 무엇을 입고 싶니?

소매 없는 잠바? 짧은 소매달린 드레스? 아니면 긴소매 드레스?

플레어 치마? 데님 치마? 아니면 꽃무의 치마?

짧은 반바지? 카프리 바지? 등산용 반바지? 아니면 그냥 바지?

바지와 티셔츠라고. 좋아. 어떤 것으로 할래?

빨강? 파랑? 초록? 줄무늬? 체크무의? 아니면 격자무의 바지?

일직선 모양? 플레어 모양? 말려 올라간 것? 아니면 평범한 디자인의 바지?

수영복 모양? 터틀넥? 짧은 소매? 아니면 긴 소매 셔츠?

만화 캐릭터? 시리얼 상자의 영웅이 그려진 것? 아니면 아무 무늬 없는 셔츠?

100%면? 면과 폴리에스테르 혼방? 아니면 면과 스판텍스가 혼합된 것?

아침을 먹자구나. 오늘은 뭘 먹고 싶니?

오렌지 쥬스? 넌출 월귤 쥬스? 포도 쥬스? 아니면 망고-귤-구아바 쥬스?

땅콩? 꿀? 황설탕? 아니면 유기농 과일이 든 그라놀라?

2%? 1%? 두유? 아니면 저지방으로 제공되는 요구르트?

일반 토스트? 계피 토스트? 영국식 머핀? 아니면 베이글?

 

목록은 점점 더 길게 이어진다. 암송이 채 반절도 안 끝났는데,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모들의 웃음소리 때문에 유진의 목소리가 묻혀서 안 들린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 올가미 속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어려서 아주 엄격하고 권위적인 훈육을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자기 아이들에게는 그런 업격한 훈육을 적용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진동 추가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너무 멀리 가버린 것이다. 그 결과 아이들 삶에서 기초가 되는 규칙이 지나치게 적은 반면, 혼란은 지나치게 많은 상황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지나치게 부족한 규칙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계속>

* 다음에는  ‘마법의 단어 : “해주면 좋겠구나(May)”가 이어집니다.

Keep Up to Date with the Most Important News

By pressing the Subscribe button, you confirm that you have read and are agreeing to our Privacy Policy and Terms of Use
Previous Post

교육부, 중학교 자유학기제 확대·발전 계획(자유학년제) 시안 발표 - 내년부터 희망학교 전면 시행  

Next Post

한국 교육열 OECD 평균보다 웃돈다. ‘2017년 OECD 교육지표 조사결과’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