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물에서 회화적인 요소도 과거 예술 작품의 경우처럼 그것 자체로 인상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영혼이 그 회화적인 요소를 만나 얻는 체험이 예술 작품이 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저 암시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과정에서 옛 예술의 원칙이 변해서 새로운 원칙이 생깁니다. 새로운 원칙은 “조소적인, 다시 말해서 생동하는 요소가 한 단계 더 진행되면 일종의 음악적인 체험으로 이어진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음악적인 요소가 거꾸로 조소적인 요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영혼에 의해 마음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후기 아틀란티스의 제 5 문화기에서 첫 3분의 1 시기를 사는 우리가 겪어야 하는 가장 내면적인 자극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이러한 발달을 이끄는 정신적인 존재들에 의해 우리에게 구정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첫 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건축물에서 이런저런 것들이 완벽하지 않음을 발견한다면, 그들에게 확실히 말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 건물을 짓는데 참ㄴ여한 사람들은 우리 건물을 비판하는 사람들보다 부족한 점을 훨씬 더 많이 찾ㄴ아낼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부족한 점들은 그냥 보아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ㄴ 것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관건은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그 첫걸음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의도한 대로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게 좀 불완전하더라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만드는 첫걸음의 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이든 이 세상에 있어야 활 것을 만드는 첫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이든 이 세상에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전부터 있었던 것보다 더 불완전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것은 이미 처ㅚ상의 단게에 도ㅓ달해 있디만, 새로운 것은 아직 걸음마 단게에 있으니, 그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예술에 관한 세계관을 쇄신하는 문제, 그리고 예술에 관한 세계관과 이 시대의 전반적인 문화생활 사이의 연관관계에 ㅜ관한 몇 자지 언급을 끝으로 오늘의 강연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끝>
(예고)
다음 기획특집은 ‘마리 루이제 콤파니, 페터 랑 엮음, 이정희 외 옮김, -아이를 새롭게 바라보는 교육- 발도르프 유아교육, 행동하는 정신>’을 연재할 예정입니다.